개인사업자의 해외 생활은 참 어렵다. 체류비자부터 시작을 하여 사업의 지속성은 물론, 개발국의 경우 의료혜택도 어려운 실정이다.
25여 년 전 케냐 나이로비에 관광비자로 입국을 한 김아무개 씨, 김 씨는 한때 서울의 명동에서 수제화 제품으로 명성을 날리던 사람이다. 하지만, 대량생산의 산업화에 밀린 수제화 제조, 판매사업은 한계점에 달 했다. 김 씨는 이러한 애로를 해결하고자 무작정 해외로 발을 돌린 것이다. 케냐에서 수제화 구두, 샌들 만들기를 시작하였으나, 대량생산의 산업물결은 아프리카도 예외는 아니었다. 25여 년 동안 해외생활을 하면서 겨우 의, 식, 주를 해결 할 정도 였다. 어느덧 나이도 칠순, 건강이 좋지 않던 김 씨는 앓아 눕게 되었다. 병원비가 비싸서 병원치료도 쉽지 않았다.
다행으로 주위의 도움으로 며칠동안 병원에 입원 후 몸은 우선하였지만, 김 씨는 여전히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. 평소에 없던 치매도 생기고, 본인의 병 치료 약값은 물론, 당장의 식생활도 어려운 처지이다. 이쯤되니 김 씨 걱정은 주위사람들 몫이다. 어느 교민이 “한인회에 연락을 하여 도움을 청하라”조언한다. 이에 김 씨는 고개를 가로 젖는다.
그도 그럴 것이 김 씨는 평소 한인회에 관심이 없는 사람인데 “죽으면 죽었지 자존심이 허락을 않는다”는 것이다. 한 교민이 대사관에 도움을 청하면 어떻겠냐는 질문에 “대사관에 뭘 기대합니까? 본인들 자리 지키기도 바쁜 사람들인데, 괜히 시간낭비 하지 마시오!”가 결론이다. 하지만, 선교사인 한 교민이 대사관 문을 두드렸다.
대사관에서 영사 한 분이 나오셨다. 현장 실태파악과 간단한 서류작성을 마치고 바로 병원으로 향한다. 지난번에 교민이 지불한 병원 영수증도 인수하며 대사관에서 지불을 했다.
교민의 어려운 처지 대사관에 협조 요청→ 담당 영사의 교민 현장 실태 파악→ 병원 입원 치료→ 불법체류비자 해결→ 한국행 티켓 예약→ 보호자 동행 한국 행 → 친척과 만남 연결→ 사회단체와 연결하여 향후, 한국 생활 기반 준비 등 2 주만에 이루어진 신속하면서도 정확한 일정이다.
바쁘신 중에도 어려운 교민을 위하여 업무적, 개인적으로 협조하여 주신 주 케냐 대한민국 대사관 직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. 특히 선두를 지휘 해 주신 권영대 대사님 , 현장에서 어려운 교민을 가족처럼 챙겨주신 이관희 영사님! 고맙습니다.